조언과 생각집/조각글

mood tracking_

TLdkt 2022. 5. 1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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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에는 능해도 편집과 의미 도출에는 늘 취약했던 내게 워크플로위는 생산성 도구 그 이상의 의미이다. 어제와 오늘, 상상도 쉽지 않은 먼 미래 사이에 촘촘한 기록이 찍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나의 일기장이자 플래너이자 비서다.

  오늘은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 때에는 신체의 말랑한 부분을 천천히 만지고, 조금씩 자세를 바꾸어가며 움직이고, 동시에 가장 편안했던 여행지를 떠올려 보라고 의사는 말했다.

 

"가장 편안했던 여행지요?"

'가장~한' 이라는 수식이 붙은 질문에 늘 그래왔듯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한 곳을 골랐다. 듬성한 소나무숲, 파란 하늘에 섞이던 코발트색 티셔츠, 파도처럼 여유롭게 미끄러지는 바람과 한참을 봐도 질리지 않았던 수평선이 그려졌다.

  그런 시간이 있었지, 그곳에서 아무런 긴장 없이 생각의 스위치를 껐던 때가 있었지.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한 이미지에 천천히 숨이 가라앉고 손발의 힘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할일을 정리하다 문득 무드 트랙킹만 하고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사교적인 약속은 커녕 외출조차 자주 하지 않아 다이어리든 캘린더에든 건조한 일정만 가득했기에 하트 고양이 이모지를 검색하면서도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걸, 놀랍게도 워크플로위의 긴 검색 결과는 거의 매일이 평온을 넘어 행복하기까지 했다고 말해주었다. 하나 하나의 토글을 열어보니 우스꽝스러운 바보짓을 한 날에도, 특별할 것 없는 날에도, 심지어는 '아 당떨어져;;''를 남발하던 날에도 나는 행복해했다. 단순히 집밥이 그럴듯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웃겨서, 가끔은 안약을 제때 넣었기 때문에(!) 말이다. 어이없는 이유들에 웃음이 났다.

 

  이래서 모든 영상물에 플래시백이 들어가나보다. 어려운 것들 투성이인 하루하루에 나는 쉽게 기뻐하고 매일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이는 뇌과학적인 근거로도 뒷받침된다. 우리의 뇌는 힘들고 슬픈 장면을 분석해 다시는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려면 그것들을 슬​로우모션으로 반복적으로 돌려봐야 하고, 사려깊은 작은 뇌가 우울을 촘촘히 그려내는 동안 행복한 순간은 금방 스러진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 행복했는지, 행복할 때 내 몸의 느낌은 어땠는지를 주기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인생의 마지막 플래시백, 소위 말하는 '주마등'에 남기고 싶은 것은 결국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일 것이고, 그 순간을 만들어주는 건 주기적인 회고뿐이다. 언젠가 꼭 사야지, 하고 생각날 때마다 모아두었던 '나를 위한 선물' 목록이 우스워졌다. 진짜 '나를 위한 선물'이란 이렇게 돌아볼 수 있는 습관이 아닐까. 소중한 순간을 되짚고 잘 접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이런 습관 말이다. '되고픈 이미지'의 상업적 구현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물성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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