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과 생각집/조각글

{Together} Driven Developer: 잘 만든 바게트처럼🚀

TLdkt 2022. 10. 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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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구운 식빵

 



[잘 구운 바게트는 안 먹어도 기분이 좋다]


 몇 년 전 파인 다이닝에서 일하며 나는 바게트의 맛을 알게 됐다. 사장님은 매일 그날 사용할 바게트를 손질하며 오늘은 상태가 좋지 않다고, 혹은 오늘은 적당한 굽기라고 하셨는데 빵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바게트가 거기서 거기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듯도 하다.

제빵사가 바뀐 건지 만족스럽지 못한 바게트 상태에 사장님의 낙심이 이어지던 어느날,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바게트라며 열띤 표정으로 빵을 보여주시는데, 그때 알게 되었다. 정말 맛있는 바게트는 고소하게 맴도는 향긋함에 굳이 맛을 보지 않아도 흐뭇한 기분을 들게 한다는 것을.
바게트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기준이 매우 엄격해서 아무 빵에나 바게트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한다. 물과 이스트, 밀가루만으로 만드는 빵만을 바게트라고 명명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뽀송한 기분을 들게 하는 것. 바게트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통용되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면 상대가 좋아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비굴할 정도로 숙이고, 맞춰주는 것에 익숙했다. 그러나 지내고 보니 일방적인 노력이 꼭 답은 아니었다. 바란 적 없는 호의가 쌓이는 것이 주는 쪽에게도, 받는 쪽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머리가 굵어지며 깨닫게 되었다. 반면, 한번씩 남몰래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어딘지 담백한 맛이 있었다.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매력보다 마치 바게트 같은 편안함이 공통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좋은 '함께함'이란]

 

  그때부터였을까? 영어회화를 쉐도잉으로 연습하듯, 그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살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오래지 않아 그들이 공통적이고 일관적인 훌륭함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깨닫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사려깊고 세심하지만 가끔씩은 답답했고, 누군가는 솔직하고 시원시원하지만 종종 마음이 다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을 오래 보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성정이 당시의 상황에 적합했고,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보내준 캡처 하나로 시작된 정주행.... 네이버웹툰, 합법해적 파르페




그래서 나는 귀기울이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떤 성격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성격이 달라도 함께함에 있어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함께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 상황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 아주 작은 의견에도 귀기울이는 사람이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근래 팀 빌딩 서베이를 통해 팀원들이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지 알아보면서, 함께 일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금 느꼈다. '이것만은 조심해요!'라는 주제를 잡아 팀에 어떤 상황만은 오지 않기를 바라는지 서베이를 진행했는데, 팀원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의견 대립 자체가 아니라, 대립 시 느끼는 '무안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베이를 위해 여러 기업의 기업문화를 조사하면서 분위기 좋다고 소문난 곳들이 유독 '대화 방식'에 대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가이드를 제공한다고 느꼈다. 이 역시 팀원들이 존중받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 아니었을까? 

  잘 듣는 것의 중요성은 이 동방예의지국에서 강조해 마지않는 것인데, 여전히 그 중요함을 깨닫는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이스트와 밀가루만 있다고 바게트가 맛있는 게 아니듯이, 경청이 중요한 걸 알아도 제대로 쓰지 않으면 향기로운 협업은 물 건너간 것이다.


 

[어떻게 귀기울일 수 있을까?]

 

한편, 귀를 기울인다는 게 단순히 듣기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협업이라는 항해에서 yes만을 외치며 충돌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겼던 어린 시절에는, 귀를 기울이는 만큼 우리의 배도 기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듣고 수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고,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며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유익한 갈등을 추구하는 것. 이제는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경청이다.
물론 팀원들의 성격이 너무나 다르다면, 더 잦은 오해와 충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팀 내에서 이런 성격 차이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볼 때, 갈등을 환영하고 팀의 밑거름으로 여길 때 오히려 팀은 더 끈끈해지는 것 같다. 마치 성격이 정반대인 연인들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며칠 전 훈련지원금을 수령하는 김에 해본 직업적성검사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자기성찰능력'이 가장 높다고 나왔다. 논리력이나 수리력 같은 게 높다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함께 일하기 좋은 동료'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려면 꼭 필요한 성격이라고 생각해 기분좋게 보기로 했다. 잘 구워낸 바게트처럼 기본을 지키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그게 나의 변치 않을 직업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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