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과 생각집/조각글

물 같은 사람이고 싶다

TLdkt 2022. 7. 2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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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표현할 딱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게 '물'이라면 좋겠다. 언젠가 음식에 성격을 비유하는 심리테스트를 보며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을 물로 보다' 라는 말은 욕으로 쓰인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하는 일이 야무지지 못하고 싱거운' 이미지에 유래했다고 한다. 체계적이고 단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내 입장에선 기피해야 할 특성이겠다. 그렇지만 생각할수록 물로 보이는 건, '물의 특성'을 갖는 건 아무리 곱씹어봐도 멋진 일이다.

 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물의 반대말은 불이니까. `불로 보다`라는 말은 없을뿐더러 어감에서 드러나듯, 사람들이 불을 만만하게 보지는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내게는 불이 좀 더 하찮기 때문이다.

 

 사랑은 타오르는 것,이라는 예사로운 말을 나는 싫어한다. 가장 넓고 깊어야 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에-때로는 청춘, 혹은 삶 등등 하여튼 소중한 것에- 소멸을 내포하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그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가치관에 나는 반대한다. 

타오르는 것은 반드시 그 끝이 정해져 있다. 전염성이 강하고 폭발적일지라도 산소만 차단하면 그만이다. 불은 회복이라는 게 없는 존재다. 불의 흔적은 불씨가 아니라 잿가루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나 물은 어떤가. 물은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물에 젖지 않는 소재로 막더라도 수압으로 터뜨려 이겨내고, 무엇으로 덮어도 물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이 물을 대표하는 성질 아닐까. 물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되고, 날카로운 얼음이 되었다가 포근한 눈이 되기도 한다. 온도에 따라 뭉근히 사람들을 치유하기도, 갈데없이 끓어올라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

  물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빠짐없이 채운다. '큰물'에 사람들은 쉽게 매혹된다. 죽음을 잊고 성큼성큼 바닷속으로 걸어가는 이미지가 흔하디 흔한 클리셰가 된 것은 물의 깊고 넓은 매력이 오래 이어져왔다는 뜻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타오르고 스러지는 형태에 반대하며 어떤 식으로든 이어가는, 충분히 위협적일 만큼의 강력함을 가졌어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묵직하고 단조롭더라도 끝까지 흐르는, '있음'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장마의 끝에 주방 후드와 세탁실 천장으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다. 새는 물 때문에 합선이 되면, 감전이 되면, 화재가 나면... 수많은 if를 머릿속에 그리다 문득 물이 무서워져 이 글을 쓴다. 사람이 다쳤다는데 본인 수도세 걱정을 하고 계시는 건물주님께서 나를 물로 보시기 때문에 이 난리가 났지만...지금이야 물로 보일지 몰라도 언젠가 '큰물'만큼 매혹적인 삶을 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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