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과 생각집/조각글

꼭 맞는 만큼만 말하고 싶어

TLdkt 2022. 9. 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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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34aMibcwkE
그때는 그럴 줄 알았지
2009년이 되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너에게 말을 할 수 있을 거라
차갑던 겨울의 교실에
말이 없던 우리
아무 말 할 수 없을 만큼
두근대던 마음

우리가 모든 게 이뤄질 거라 믿었던 그 날은
어느 새 손에 닿을 만큼이나 다가왔는데
그렇게 바랐던 그 때 그 마음을 너는 기억할까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2009년의 시간들





2009년의 우리들,  2019

정확히 10년 간격의 노래 두 곡을 듣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작은 몸집에 비해 버겁게 크던 책상에 골똘히 앉아 문제집 한귀퉁이를 찢어서는 주사기 모양 샤프펜슬에  말아넣던 순간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이 된 내가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지 궁금했었다. 아무런 임팩트 없는 일상일 뿐이어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기억해줄 수 있을까. 꼬깃해진 종이에 무슨 내용을 적었는지까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예측 불가한 미래의 나에게 묘하게 서운해하던 마음과,  혹시나 너무 오래 기억해 잊을 기회가 없을까봐, 그래서 기억해내는 순간의 기쁨과 재미가 없어질까 걱정하던 마음은 어스름히 남아있다.

하늘이 높아진 만큼 두서없는 생각도 끝 모르고 뻗어 나간다. 빠져나올 힘도 딱히 없어 할일 목록에 근근히 가위표를 쳤다. 멍하니 앉아있다 스터디를 어영부영 파하고는 어제부터 찾아두었던 비지스의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누워버렸다.

비지스라니 듣도 보도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메가 히트를 친 세계적인 그룹이다.  이 난데없는 와식생활은 한 아이돌 멤버가 웨스트라이프의 my love를  '올드팝송'이라고 칭하는 바람에  시작됐다. 내게 '올드팝'은 비틀즈와 비지스인데 웨스트라이프가 벌써 그것의 반열에 올랐을 리 없다며 검색어에 굳이 비지스를 쳐본 것이다.  

올드팝,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는 입술 끝을 느끼다 보면 어쩐지 생닭 비린내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던 치킨집이 떠오른다. 미성년의 끝자락에서 처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손에 쥐어봤던 곳.

연배가 다양했던 그곳의 직원들은 어리숙하고 표정이 얼굴에 전부 드러나던 나를 재밌어하며 자주 말을 걸었다. 내가 흥얼거리는 팝송을 듣고, "이야 그거는 아저씨 젊었을 때 노랜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휘둥그레 묻던 중년 남성과 묘하게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저는 올드팝 좋아해서요, 자주 들어요." 대답하던 그때의 나는 유튜브 영상 속 아이돌과 같은 프레임으로 겹쳐진다.

세대를 관통하는 취향을 가졌다는 뿌듯함에 괜히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솜털도 채 다 빠지지 않아 파운데이션도 잘 안 먹던 볼은 기쁘게 부풀어 있었다. 아직도 내가 그때 왜 그토록 자부심을 가졌는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영상 속 아이돌은 딱 그때의 내 나이쯤이었고, 그 애의 볼도 마찬가지로 빵빵했다.



언제나 대유행인 '동년배 만나서 반가워하기'  콘텐츠 속  MC의 나이가 내 또래가 되었고, 나는 그들을 비웃었다. 같은 것을 공유하지 못하고, 옛날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이 뭐가 그렇게까지 무섭고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부각되지 않아도 되는 차이가 드러나고, 한국 특유의 나이 서열이 강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함을 느낀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 내가 또래와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문화를 즐기지 못해왔기 때문에?
"너한테 우리는 아줌마지? 할머닌가?"라고 말하며 처량한 눈매를 하던, 고작 대학 졸업반이던 그때의  언니들이 떠올라서?

모르겠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나는  불요한 소속감의 공유에서 나오는 열띤 분위기가 싫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이 다른가.  드러나게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혼자 뜨악한 표정으로 비지스의 트랙을 검색하는 나는.


밀도있는 시간을 보낼수록 어떻게 하루를 쓸 것인가에서 시작해  크게는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10년의 차이를 두고 나온 곡들이 서로 다른  안정감을 주는 것처럼, 셔프펜슬 속에 접어넣었던 쪽지 조각의 간절함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익어가고 싶다. 시간에 헛배부른 쭉정이가 되지 않도록.















https://youtu.be/FnnDNFz9TkM



눈을 뜨면 내 얘길 들어줘
네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있어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고 싶다던 너의 고백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

모든 겨울을 지나왔을 네게
이 봄을 담아서 온기를 담아서
노래 부를게

너와 함께 걷던 서교동 거리에
지금은 비가 내려 세상은 촉촉하게

미래는 한걸음씩 우리 곁을 찾아오고 있고
우리의 항해는 이제 여기 시작되려 하지
푸르게 피어날 4월의 노래 네게 주고 싶어
우리는 올해도 죽지 않고 살아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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