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T 회고

[모락모락 회고]우아한 쇠퇴: 감정을 주머니 속 조약돌처럼 매만지는 법

TLdkt 2022. 12. 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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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키워드는 '피로함'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 너무나 빠른 변화, 천재적인 동료들, 재능의 부재에 대해 고민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뿐인가, 학습의 과정, 업무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마주하는 에러가 상황에 대한 통제감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이라면 감정적으로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는 업계라고 생각한다.

가끔 나는 우리가 공유하는 이런 긴장감에 대해 '악어게임'에 비유하며 농담을 하기도 한다. 악어게임은 플라스틱 악어의 이빨이 랜덤으로 철컥 하고 닫혀, 그 시점의 참여자가 벌칙을 받는 게임이다. 컴퓨터와 그 주변 환경에 대해, 새로운 기술적 도입과 변화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하루하루 나아가다 보면 마치 언제 물릴지 모르는 악어의 이빨을 누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전의 나였다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었을 것이다.


인생이 한 마리의 잘 구운 갈치라면, 뽀얗고 꽉 찬 시간만 발라내는 것.

한 번의 젓가락질로 비효율과 효율을 갈라내는 것에 쾌감을 느끼던 나에게 개발이라는 분야는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반복적으로 행동지침을 수정하며 발전을 향해 나아가던 감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도저히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는 에러와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르곤 했다.

쉽게 가르치기로 유명하다는 모 사설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고작 용어 하나를 몰라 빌드가 안 된 줄 알고 사흘 밤낮을 끙끙댔던 것, 고민 끝에 다른 튜토리얼을 겨우겨우 따라해냈는데, 알고보니 전자의 강사가 모든 것을 원리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줬었다는 걸 알았던 것, 그렇게 낯선 외계어 투성이를 간신히 머리에 집어넣었는데 정작 실습에서 해내야 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어 맥이 풀렸던 날까지...

콕 집어 무엇이 힘들었다, 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언젠가는 더 이상 삶을 잘 발라낼 수 없겠다는 막막함이 들기도 했다. 마치 모든 순간이 나의 실패와 재능없음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초반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개발자 지인들에게 "이게 맞아?" 를 연발하며 징징거리곤 했다.
깃헙 데스크탑을 깔아도 푸시가 안된다는 하소연부터 시작해, 인텔리제이가 안 켜진다는 주장까지.. 온갖 황당한 소리에도 다정한 나의 지인들은 장난기 섞인 웃음 한 번 내색하지 않고 조언을 건넸다.

"개발은 원래 다 이래?"라는 투정 섞인 질문에 돌아왔던 답은,

"맞아, 개발자는 삽질이 필수역량이랬어."였다.

고작 한 문장임에도 나에게 주는 위로는 그 어떤 포옹과 응원보다도 컸다. 남들 다 잘만 넘어가는데 나만 죽을 쑤고 있을 때도, 에러는 해결됐으나 찝찝함만 가득히 남을 때에도 그 말 한 마디를 곱씹으며 애써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언젠가는 부주의한 실수로, 때로는 앞선 학습의 이해 부족으로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면 불안하게 붙어 있는 평정심을 뚫고 자책이 후두둑 들이쳤다. 그간의 에러만 보면 필수 역량은 충분히 채우고 있는 것 같은데 발전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게 많아질수록 초라한 능력은 더 작게 느껴졌고, 그 간극을 채우는 방법을 알지 못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곤 했다. 그때의 무력감은 앞으로도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그즈음 심리학 칼럼에서 '우아한 쇠퇴'라는 표현을 인상깊게 봤다. '우아한 쇠퇴'란 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정보를 입력받거나, 극단적으로는 주요 기능이 손상되더라도 뇌 자체가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는 중대한 문제에도 침착히, 우아하게 시스템을 조율해 어떻게든 동작하게 만든다. 왠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떠오르는 기제다. 어떤 해결책조차 없더라도 가늘게 존재하는 것, 경보를 울리며 문제를 더 키우기보다, 묵묵히 갈무리하는 것. 어찌보면 냉담한 면이 있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미워했던 말이지만, 지금은 꽤 선호하는 삶의 태도다. 글쓴이는 이 '우아한 쇠퇴'를 믿고 세 가지를 실천해 보기를 조언한다.


- 과거의 실패와 현재를 분리할 것
- 순진하게 기대할 것
- 취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뇌과학에 기반한 글쓴이의 조언은 그 어느때보다도 깊숙이 스며든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신체는 우아하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으니, 실패를 과장하거나 기쁨을 축소하지 않고 그대로 맡겨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던 것 같다.


사실 파이널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설렘보다는 부담감이 더 컸다. 특히 프로젝트 첫 주에는 자괴감이 막심했다. 우연한 기회로 합류하게 된 팀에는 각 부트캠프에서 날고긴다는 인원들만 모여있었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팀원들의 유능함을 전해주며 드림팀에 들어가게 된 것을 부러워했다.

"드림팀은 맞는데... 다른 분들이 드림이고 저는 꿈꾸는 역할인데요!" 라고 말하며 자조적인 농을 던지기도 했지만, 드림팀이라는 새 옷은 생각보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좋은 사람들,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 화목한 분위기까지, 분명 맘에 쏙 드는 환경임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얼마 전 유튜브 예능에서 나왔던 질문이 떠올랐다.

[BTS의 새 멤버가 될 수 있다면, 한다 vs 안 한다?]

나는 주저없이 "그 짓을 왜 해~욕만 배부르게 먹을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 뒤통수에 내리꽂힐 객관적인 시선들, 마치
목 뒤에 빳빳하고 커다랗게 자리한 라벨처럼, 떠올릴수록 크고 작은 스크래치를 안길 네임밸류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파이널 프로젝트를 시작하자마자 버스럭거리며 순간순간 존재감을 뿜어내는 드림팀이라는 라벨을 나는 결코 웃어넘길 수 없었다.


   팀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자 속 곰팡이 핀 귤을 보는 심정으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닌 다른 유능한 사람이었다면 모두가 덜 힘들지 않았을까, 불필요한 갈등은 사실 내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평생 어떤 일에도 밤을 새워본 적 없던 내가 동이 틀 때까지 모니터를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불안함에 가슴이 먹먹해 잠에서 깨는 날이 여럿 반복됐다.

 


그러다 코로나에 걸렸다.


  초조함을 딛고 조금씩은 개발 흐름에 익숙해져 이제야 속도가 좀 나려나 싶던 차였다. 머릿속이 띵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두통쯤이야 조금 쉬면 낫겠지, 조금 자면 낫겠지 생각했지만 하루를 꼬박 몸살기운에 시달리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았다.
걸을 때마다 눈이 빠질 것 같은 두통과 마디마디가 끔찍하게 쑤셔 걷기 어려운 상태로 찾아간 병원에서 맞닥뜨린 확진 판정은, 다른 말로 바꾸어 들리는 듯 했다. 진단명은 예컨대 이런 것 아니었을까, 능력 부족에 건강까지 부족한, 팀플레이에 부적합한 인간.

 


침울하고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당시 내가 느꼈던 위기감은 딱 저랬다. 극심한 근육통과 처음 느껴보는 오한보다도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모조리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실시간으로 팀원들에게 부담과 불안을 안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디스코드 답장을 보내는 나를 보며 "코로나인데도 회의를 나오래?"라며 기가 찬 표정을 짓던 엄마는 "아니, 다들 쉬라고 하지."라는 내 대답에 무슨 말을 더 하려다 참는 것 같았다. 왜 말을 하려다 말아, 생각하며 스크랩 페이지를 켰을 때, 이 글에 언급했던 칼럼이 보였다.

 

    어떤 경우에는 고통스럽게 아파도 (중략) 그것이 아주 그렇게 당신 탓인 것은 아님을 부디 알고 당신이 누군가에게 거대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면서 낮아진 외현적 자존감을 보상하기 위해 기이하게 커진 자의식도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실패에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해도 그 기분이 당신의 어떤 측면도 감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인데 이렇게 다시 읽으니 내 상황을 훤히 보고 하는 말 같았다. 기이하게 커진 자의식은 내 탓이 아닌 것도 내 탓이라고 여기게 했고, 불필요한 자책을 낳았다. 상처에 앉은 딱지를 뜯어내 피를 보듯이 자책하는 습관은 성장이 아닌 퇴보를 가리킬 수밖에 없었다. 그때쯤 마음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부족함을 우아하게 받아들이 고 그들의 풍부함을 빠르게 배우자고.

돌이켜보면 그때 마음을 고쳐먹길 참 잘 했다. 팀원들은 알면 알수록 배울 점이 많았다. 여러 부담에도 내색없이 현명하고 능숙하게 일을 쳐내는 사람, 변함없이 긍정적인 시각과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보폭을 맞추는 사람, 부드럽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전파하는 사람, 능력치와 소통까지 만렙인 사람까지.  

그들을 타자화하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고 취급했을 때 나는 나의 약한 면을 인정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하는 것은 더욱 큰 번거로움과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밀린 설거지거리를 불리고 오염을 지우듯, 그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도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는지,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를  하나씩 찾아낼 때마다 나는 조금씩 발전했다.

 

정량적인 성장을 기록해보면, 세 가지 정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스압 때문에 그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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